2/1 김복동할머니, 이할머니 추도 긴급시위~일본정부는 당장 사죄와 배상을!!~


◇*2/1 김복동할머니, 이할머니 추도 긴급시위~일본정부는 당장 사죄와 배상을!!~*◇

 

◆시일•장소

2019년2월1일(금)

1부 12:00~13:00 수상관정앞(도꾜메또로 국회의사당앞역 1번출구 5분 다메이께산노역 5번출구 5분)

●2부 18:00~19:00 중의원제2의원회관앞(도꾜메또로 국회의사당앞역 1번출구 5분 나가따쪼역 1번출구 5분)

 

◆취지

2019년1월28일, 남조선에서 일본군성노예제 생존자 두분, 김복동할머니(1926년생)와 이할머니(1925년생, 이름 비공개)께서 서거하셨습니다. 김복동할머니는 15살때부터 광동,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방코크, 싱가포르등에, 이할머니는 17살때부터 시모노세끼, 만주에 련행되여 일본군 성노예로서 피해를 받았습니다.

 

일본이 패전한지 74년이 지나려고하는 지금도, 일본정부는 일본군성노예제에 대한 법적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2015년 한일”합의”가 상징하듯이,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의 목소리를 틀어막으려하고, 이 문제를 아예 없었던것으로 만들려고 기를 쓰고있습니다.

 

하지만 녀성인권운동가이기도 했던 생전의 김복동할머니는, “12.28합의를 받아드릴수는 없다. 일본정부가 주겠다고하는 10억엔은 우리에게는 의미가 없으며, 일본정부의 법적책임에 대한 인정과 공식사죄를 바란다 “(2016년1월28일, 국련 청원서 제출에 관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고 말하며, 숨을 거두기 직전에는 지원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셨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줬으면 좋겠다.” “재일조선학교 지원을 맡길 테니 열심히 해달라.”

 

생존자들의 부고가 이어지는속에서 저희는, 돌아가신 생존자들을 추모하면서 그 뜻을 이어갈 마음으로 긴급추도시위를 진행합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메쎄지를 모집합니다!★★

 

시위에 참가하지못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메쎄지를 모집합니다. 보내주신 메쎄지는 시위중 시간이 허용하는한 대독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메쎄지를 기다립니다.

 

【모집하는 째마】

①김복동할머니, 이할머니에 대한 메쎄지

②일본정부에 대한 메쎄지

 

【투고방법】

●아래 성차별철페부회 FB 페지에 투고해주십시오.

https://www.facebook.com/events/2343738975846261/

●아래 이메일주소에 “2/1메쎄지”라는 제목으로 이메일을 보내주십시오.

hurak.sccp@gmail.com

 
【접수마감】

2월1일 (금)17시

 

【주의사항】

주최자가 시위취지에 알맞지않다고 판단한 투고는 삭제하겠습니다.

 

★★조선학교”금요행동”(같은 날 16~17시, 문과성앞)에도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에 있는 조선고급학교 학생들은 일본정부에 의한 차별로 2010년이후 계속 “고교취학지원금” 제도에서 배제되고있으며, 일본정부는 국련 각 인권조약기관에서 수차례 차별시정권고를 받고있습니다. 김복동할머니는 일본정부에 의한 재일조선인 아이들에 대한 차별에 분노하여, 조선학교를 몇번이고 방문하며 ,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주어, 학교에 기부까지 하셨습니다.

 

2013년5월 이후, 조선대학교 학생들은 조선고급학교에 대한 제도적용을 요구하는 “금요행동”을 매주 금요일 16시부터 17시까지 문과성앞에서 진행하고있습니다. 여기에도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최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성차별철페부회

 

〒110-0016 도쿄도 타이토구 타이토 3-41-10-3F

TEL 03-3837-2820 FAX 03-5818-5429

hurak.sccp@gmail.com

http://dareiki.org/

 

◆략전

 

【김복동 님】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출생

1940년 만 14세에 일본군‘위안부’로 연행.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가 됨.

1945년, 싱가폴에서 일본군 제16사령부 소속 제10육군병원에서 간호사로 위장당하여 일본군인들 간호노동, 버려짐. 미군포로수용소에 수감

1947년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 째 되던 22세에 귀향

1992년 3월, 일본군‘위안부’ 피해 공개, 활동 시작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증언

1993년 6월,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 증언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 실상을 문서로 증언.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대지진 피해자 돕기 모금 제안, 1호로 기부

2012년 3월 8일, 정대협과 함께 전시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 설립

2012년 7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의회로부터 용감한 여성상 수상

2012년 ~ 16년, 유엔인권이사회,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 매년 수차례 해외 캠페인을 다니며, 전쟁 없는 세상,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위해 활동.

2013년 7월 30일, 해외 첫 평화비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참석, 활동

2014년 3월 7일, 베트남 한국군성폭력 피해자에게 사죄와 지원 메세지 영상으로 알림.

2015년 5월, 국경없는기자회, AFP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

2015년 6월 25일,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 장학금으로 5천만 원 나비기금에 기부.

2015년 12월 10일,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015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 수상.

2017년 7월 6일, 재일 조선 고등학교 학생 2명에게 김복동장학금 전달

2017년 8월, 사후 남은 모든 재산 기부약정

2017년 9월 26일, 서울특별시 명예의 전당에 선정

2017년 11월 23일, 한국 포항지진 피해자돕기 1천만원 후원

2017년 11월 25일, 정의기억재단으로부터 여성인권상 수상

2017년 11월 27일, 여성인권상금 5천만 원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활동을 위해 ‘김복동평화상’ 제정, 정의기억재단에 기부(1회 수상자 : 우간다 내전 성폭력 생존자, 인권운동가 아칸 실비아 선정)

2017년 12월 10일, 국제여성인권단체인 <Women’s Initiatives for Gender Justice>, ‘성평등 유산의벽‘에 김복동 할머니와 정대협 선정.

2018년 6월 9일, 일본 도쿄 사단법인 희망씨앗기금 주최 집회 참석, 발언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김복동장학금 수여

2018년 12월 10일, <김복동의 희망> 명예회장 취임

2018년 11월 22일, 재일조선학교 지원을 위해 5000만원 <김복동의 희망>에 기부

2019년 1월 2일, 바른의인상 수상, 상금 500만원 재일조선학교를 위해 <김복동의 희망>에 후원

 

【이 님】

 

할머니는 1925년에 태어나셨습니다. 17세 되던 1942년경 직장인 방직공장에서 퇴근하다가 그 근처에서 군용 트럭에서 내린 군인에게 동료 2명과 함께 납치되었습니다. 트럭에는 이미 여러 명의 여성들이 타고 있었고, 다른 트럭에서 내린 또 다른 여성들 열댓 명 정도와 함께 강제로 배에 태워져 일본 시모노세키로 끌려가셨습니다. 시모노세키에서 또다시 만주로 끌려가 끔찍한 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당하셨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일본군인들이 오지 않아 해방이 된 것을 알게 되었으나 돈도 한 푼 없고 조선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 귀국 방법을 찾던 중, 항구로 가면 조선으로 가는 배가 있다는 말을 듣고 동료 2명과 함께 항구로 가서 조선인 선주에게 사정하여 간신히 밀수선인 소금배를 얻어 타고 귀국했습니다.

 

할머니는 피해 경험으로 얻은 죄책감과 피해의식으로 평생을 괴로워하셨습니다. 오랫동안 고통을 잊지 못하시고 늘 얼굴에 그늘이 져 계셨습니다. 찾아뵐 때마다 할머니의 얼굴에 드리운 괴로움과 외로움을 보며 안타깝고 아팠습니다.

그래도 활동가들을 보시면 무척이나 반가워하시고 집에 잘 돌아갔는지 확인 전화도 하실 정도로 정이 많으셨습니다.

 

할머니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 외롭고 힘든 기억 모두 잊으시고 편안하시기 바랍니다.